突然也對這個問題感興趣,看了樓上幾位答主的回答,就順便搜了一下韓國的naver,看看韓國網友對此如何回答,首先是07年一位被選為最佳答案的網友的解答,原文如下:

1945년 8월 15일의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더불어 서울시정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가 일제시대에는 경성부(京城府)로 불리어졌으며, 법적 지위도 경기도내의 1개 행정구역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의 경성부는 도의 관할하에 있는 지방행정관서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러나 서울시가 경기도의 관할에서 벗어나고 도(道)와 같은 수준의 지방자치단체로서 시로 승격된 것은 1946년 8월 15일 광복 1주년에 때맞춘 경사였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일제시대에는 ‘경성부’로 불리던 서울은 1945년 8월15일 광복과 함께 서울로 개칭되었으며 1946년에는 도와 같은 수준의 지방자치단체로 격이 상승되었습니다。 이어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수도로 결정되었고 1949년에 우리가 아는 지금의 서울특별시가 되었습니다。

서울의 명칭

우리말로 한나라의 도읍지를 뜻하는 ‘서울’이란 이름은 어떻게 생겼을까?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이라 이름지었으며, 또 이를 서벌이라고도 했다 한다。 당시의 신라는 나라 이름과 수도의 명칭을 같은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따라서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 또는 서벌이나 나라 이름인 신라, 시림 등으로 부르는‘’이 모두 지금 우리말의 수도를 뜻하는 서울의 어원으로 보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백제의 수도인 소부리와 고려의 수도인 개성(송악), 후고구려의 수도인 철원 등도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우리말의 수도를 뜻하는 서울의 어원인 ‘’로 보고 있다。

이와같이 우리나라의 도읍지는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어도 부르는 칭호는 ‘’ 곧 서울이었으며, 그것은 새국가가 수도를 옮겨 이룩한 ‘새 벌’, ‘새 땅’의 의미를 지녔다。

這位韓國網友大致講了三層意思,

1。在日治時代,首爾被稱為「京城府」,只是「京畿道」這個道官署的所在地,而朝鮮半島獨立以後,1946年8月15日光復一週年之際,首爾脫離京畿道作為「地方自治團體」升格為與其他道同等地位的「市」。

2。在朝鮮時代被稱為「한양」(漢陽),在日治時代被稱為「경성부」(京城府)的首爾,在1945年8月15日光復的同時被改稱「서울」。1948年大韓民國成立後,定首爾為首都,也就有了現在的「首爾特別市」。

3。而為什麼光復後要把它改稱「서울」呢?這是因為「서울」在韓國語裡有“都邑,都城”的意思。而這個語源可以追溯到三國時代的新羅和百濟的國都名。另外光復後改稱「서울」,有一種改朝換代,新國家建立的意味(這個為什麼覺得…在哪裡…嗯)

這個韓國網友的回答(2007年)似乎只談到了首爾這個地方現在韓國語叫「서울」的由來。

而我又查到一個更早的問與答,是2003年的,那時候韓國還沒有公開宣佈「서울」的漢字名稱為「首爾」,這個回答比較有含量。

以下為原文引用: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의 수도를 ‘서울’이라 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1946년 8월 15일 이후의 일이다 (광복1주년 ‘서울시헌장’)。 서울이라는 이름이 옛 신라의 국호 , 서벌(徐伐)·서라벌(徐羅伐)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데는 사계의 이론(異論)이 없으나 막상 서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어원에 관해서는 이론이 분분하다。 조선개국초기에 도성을 축조하는데 그 주위규모를 결정하기 어려 워 고심하던 중, 어느날 아침에 깨어보니 밤사이에 눈이 내렸는 데 현 도성의 울안은 눈이 녹고, 그 밖에는 하이얀 눈이 줄을 그 은 듯 남아있어, 분명 하늘의 깨우침이라 믿고 그 선을 따라 도 성을 쌓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성을 눈 울타리, 설울(雪城)이라 불렀고 이 말이 와전되어 ‘서울’이 되었다는 재미있는 설조차 있다。 대체적으로 ‘서’는 솟터의 ‘솟’과 관계가 있고, ‘울’은 들을 의미하는 ‘벌’과 관계가 있 다고 본다。 서울은 상읍(上邑), 수읍(首邑)을 의미하는 일반명사 로서 옛부터 전해내려온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여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을 ‘서울’이라 부른 것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의 사건인 것이다。

‘서울’ 이전의 서울은 경성부(京城府, 케이죠오후)였다。 물론 일제가 우리나라를 합방한 경술국치(庚戌國恥, 1910。 8。 29。) 한 달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경성부 이전에 서울의 공식명칭은 한성부(漢城府)였다。 그러니까 한성부라는 명칭은 이성계가 고려의 왕도인 개성(開城)에 정을 붙일 수가 없어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고 천도를 감행한 후, 태조4년(1395) 6월 6일자로 선포한 서울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한성부라는 이름 이야말로 515년간 변함없이 유지되었던 가장 오래된 서울의 공식 명칭이었다。 서울시장에 해당되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는 육조판서가 종2품인데 그 보다 한 격이 높은 정2품 벼슬이었다。 그 만큼 치세에 있어서 한성부의 위치가 높았다。 “영의정보다 한성 판윤 내기가 더 어렵다”는 옛말도 있거니와 그만큼 편파성이 없 는 공정한 인물이어야 했고, 외가 3대까지 그 지체를 살폈다。

한성부 이전의 명칭은 한양(漢陽)이었다。 한양은 고려조에서는 수도(中京)인 개성, 서경(西京)인 평양, 동경(東京)인 경주와 함께 4대도시로서 이름이 높았다。 고려 11대 문종은 22년(1068)에 한양에 이궁(離宮)을 짓고 그 별명을 남경(南京)이라 했던 것이 다。 15대 숙종 때는 남경천도론까지 대두했으며, 동쪽의 대봉(大峰, 낙산), 남쪽의 사리(沙裡, 용산), 서쪽의 기봉(岐峰, 안산), 북쪽의 면악(面嶽, 북악)에 이르는 지금의 서울도심구역의 대강 을 확립하고 신궁(新宮)을 대거 증축했다。 그리고 우왕(禑王)과 공양왕(恭讓王) 때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국운이 쇠하고 도참설이 흥하면서 일시적인 천도가 단행된 사실이 있다。 그러나 한양을 국도로 전립(奠立)한 것은 태조 이성계였다。

위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시대의 서울의 정식명칭은 한성이였습니다。 또한 조선시대때 가장 중국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던것도 사실이구요。 또한 서울의 명칭이 아직 100년도 안된데 비하여 한성이란 명칭은 500년넘게 그 명칭을 불리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서울의 명칭은 조선시대때부터 계속 그 명칭으로 중국은 부르고 있는거죠。 또한 거기에는 서울이 순우리말이라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이유도 있겠지요。

相當長阿…按照這個韓國網友的說法,首爾被稱為「漢陽」始於高麗王朝時期,但那時候的國都是現在的開城。而李成桂推翻高麗,建立朝鮮王朝後,遷都到現在的首爾,太祖4年(公元1395年) 6月6日宣佈改稱「漢城府」。所以在朝鮮王朝時,首爾的正式名稱就是「漢城」,並且沿用了515年,可以說是首爾歷史最悠久的一個名字。而李朝時期,大清國和朝鮮往來頻繁,對當時的中國百姓來說,「漢城」這個名字比任何其他別稱都要耳熟能詳。而「서울」這個名字,叫了區區一百年都不到,這也就難怪到現代中國人還沿用「漢城」這個名字。另外,韓國光復後改稱的「서울」這個詞是韓國語中的固有詞,固有詞不像漢字詞,它是沒有漢字對應的,所以後來05年宣佈它的漢字是「首爾」,也算是韓國人自己的創造吧。說他們別有用心也不無道理。

個人覺得03年這篇學術性比較強,可信度高,總結一下,就是現在首爾這個地方,易名情況如下:

高麗時期 한양 漢陽

朝鮮王朝時期 한성/한성부 漢城/漢城府

日本殖民時期 경성부 京城府

1945年韓國光復 서울

1948大韓民國成立~2005 서울(中國沿用古稱“漢城”)

2005~今 서울 首爾

我想透過引用兩位韓國網友的解答,應該解釋清楚了吧。。所以這其實不是一個「漢城」改為「首爾」的問題,而是韓國政府宣佈,現在的韓國首都,韓語是서울,漢字是「首爾」。